차남을 장남 샌드백 삼으려고 낳은 비정한 엄마

안녕하십니까? 
전 요즘 엄마가 저한테 쓰라고 주신 엄마 명의로 된 휴대폰을 쓰고 있고 엄마 아이디 빌려서 이 글을 써보겠습니다. 

전 40살 남자고 1982년에 태어났습니다.  

때는 1987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6살이었던 저와 7살이었던 형 그리고 부모님, 이렇게 네 명은 약 15평인 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친척이나 지인들과 함꼐 고스톱을 치려고 밤마다 휴일마다 저와 형을 그 15평인 방에 두고 몇시간씩 외출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에는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었고 아이들이 쓰며 시간을 보낼만한 물건은 TV 한 대가 전부였습니다. 형이랑 함께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형이 보고 싶어하는 채널로 돌려서 보고 한 번은 제가 좋아하는 채널로 돌려서 보기로 했으나 전 그만 형이 보자는 채널로 돌려서 보고 있을 차례에 제가 좋아하는 채널로 돌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형이 제 배를 주먹으로 쳤고 전 아파서 엉엉 울었습니다. 형제가 서로 보고 싶어하는 TV 채널이 3년 동안 항상 같을 수는 없는겁니다. 이런 일이 1987년에서 1990년에 20평 넘는 아파트로 이사가기 전까지 무한반복되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도 엄마가 맞벌이를 90년대 초에 시작하셨는데 하루 중에 엄마가 출근하던 시각이었던 오전 8시 20분에 엄마가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현관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형이 제 배를 주먹으로 세게 쳤고 전 배를 잡으며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옆으로 누워있던 제 옆구리를 마치 축구선수가 중거리슛 날릴 때 공 차듯이 세게 퍽퍽퍽!~ 발로 찼습니다. 그리고 전 “왜 때리는데?!”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고 오전 9시나 10시까지 제 방으로 들어가서 울다가 울분을 풀기 위해 찾은 곳이 그 떄 당시 오락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오시는 5시 30분까지 동전을 갖고 있었으면 오락을 하고 안 갖고 있었으면 남이 하는거를 구경했습니다. 이런 일이 제가 국민학교 5학년이었을 때부터 2년 동안 특히 방학 중에 집중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전 6실이었을 때부터 형이 명문고에 가느라 가족과 떨어져 살기 시작했던 때인 제가 15살이던 해까지 제 뇌는 항상 무의식적으로 하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집에 아빠가 없으면 무조건 집에 있지 말자였습니다. 아빠 있는 데서 형이 대놓고 저를 패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단축수업이라도 하는 날이면 수업이 일찍 끝나도 저녁까지 오락실에서 있다가 집에 가곤 했습니다. 

10년 동안 형에게 맞았었을 때의 아픔?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만큼이나 더 괴로운 게 있습니다. 전 그렇게 국민학교 5학년이었을 때 2년 동안 오락실에서 한창 성장기에 오락을 하느라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졌습니다. 전 누가 봐도 두꺼운 안경알이 있는 안경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사촌 중에 저처럼 중학생 때부터 안경을 꼭 써야 되서  쓴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전 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 국민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알겠지만 그 때 아마 14과목이었을겁니다. 14과목 중에 수가 그렇게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했는데도 5개는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만약에 내가 형에게 맞아서 스트레스 푸느라 오락했던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물론 서연고는 공부만 잘 해서 다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운도 따라줘야 되서 장담은 못 하겠으나 중경외시 중에 한 곳은 가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랑 같이 병원에 다니며 말을 몇 마디 해보고 뇌전증 걸린 이유도 엄마 때문이란거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 뇌전증이 아버지 때문에 걸린 건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도 제가 그렇게 썩 좋아하지는 않았던 게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화장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 조금만 짐작해보면 엄마가 화장실에 있는 걸 알 수 있는데도 저한테 “엄마 어딨나?” 라고 믈었습니다. 아빠한테 술냄새도 났습니다. 그래서 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빠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저와 지금 약국 가면 약사랑 대화를 할 때 약사와 저의 거리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가까운 상태에서 저한테 “광식아!~ 광식아!!~ 광식아!!!”라고 크게 소리치셨습니다. 제 이름이 광식은 아니고 제 이름을 지금 여기서 밝히기는 좀 그렇고 그냥 광식과 비슷한 이름입니다.  이런 일도 제가 10살일 무렵부터 20년 넘게 자주 있었습니다. 아빠는 군생활을 10년 넘게 하셨고 목소리가 큰 편입니다. 전 그렇게 아빠가저한테 크게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냥 저건 아버지 성격이라고 생각했고 그러지 말라고 말해봐야 딱히 그 내 이름을 크게 부르던 습관이 크게 달라지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또 아빠 자존심을 기를 어린 마음에 세워주려고 자꾸 내 이름을 크게 불러도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제 뇌가 아빠가 크게 내 이름 부를 때마다 충격 받았을거고 그래서 뇌전증 걸린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웬걸? 뇌전증 걸린 이유가 오락을 너무 많이 해서였습니다. 

이런 일을 몇년 전에 그러니까 그 떄가 언제냐면 제가 대학 졸업한 지 몇 년 지난 후에 그 떄까지 주로 명절에 만나던 가족인 30명을 모아놓고 말해봤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듣고 30명 중에 5명이 가족이 너에게 많이 잘못했고 넌 잘못한거 없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30명 중에 10명은 완벽한 부모는 없다 라거나 부모가 그럴 수 있다 라는 반응이었고 나머지 15명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30명이 모인 자리에서 제가 엄마를 향해 그 때 왜 그랬냐며 크게 소리치고 전 제 방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제 방 안에 있었는데 엄마가 친척과 상의를 했는지 나가서 혼자 한 번 살아볼래? 라며 허름한 원룸 얻어주셨고 지금 5년째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월세도 엄마가 내고 있고 몇 년 전에는 일주일에 5만원이었으나 차츰차츰 올리며 현재는 열흘에 한 번씩 30만원씩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12월이었습니다. 그 때는 열흘에 한 번씩 20만원을 받았는데 돈을 나한테 잘 주다가 갑자기 20만원 중에 10만원은 지금 주고 나머지 10만원은 나중에 주겠다는겁니다. 그래서 전 며칠 후에 25만원 달라고 햇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10만원은 지금 주고 나머지는 며칠 후에 준다는겁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준다는거도 15만원이 아니라 10만원이었습니다. 엄마가 나한테 돈 주기 싫어하길래 내가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엄마랑 나 중에 누가 더 잘못했다고 생각하겠냐고 물어보니까 엄마가 너 고시 붙을 때까지 2년이나 3년 동안 돈 그 때 그 때 주겠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엄마가 어릴 때 형이 자꾸 저를 때릴 때 말려야 되는거도 의무 아닙니까? 그리고 15평인 방에서 3년 동안 어차피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방에서 항상 계속 있으면서 형이 자꾸 저 떄리면 그 때마다 폭력은 나쁜거라고 말려줬어도 아파트로 이사 가서도 형이 저를 발로 찼겠습니니까?  형이 저를 발로 찼던 이유는 90년대 초에 TV에 연결해서 하던 록맨이나 슈퍼마리오할 때 쓰던 오락기 있었죠? 오락하다가 부모님이 오시면 얼른 오락기를 숨겨야 했는데 저도 물론 숨기고 싶었지만 느려서 그러지 못 했고 형은 너 때문에 나까지 혼났다며 저를 때렸습니다. 15평인 방에서는 7살이던 형이 힘이 애였는데 세봐야 얼마나 쎘겠습니까? 형이 저를 때리려고 하면 엄마는 형의 팔을 붙잡고 그러지 말라고 충분히 말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파트에서는 형이 나이도 10살이 넘었고 이제는 주먹이 아니고 발로 차니까 힘에 부쳐서 말리는거를 포기하고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며 직장에 꾸역꾸역 매일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전 형이 공부 잘 한다고 자랑하고 다니면 형이 야 너 앞으로 내 얘기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엄마 역할만 제대로 했으면 지금 엄마에게 돈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지방국립대라도 나와서 취직해서 돈 벌어서 돈을 주고 있었을 인생을 망쳐놓고 그리고 뇌전증까지 걸리게 한 데다가 양 쪽 눈 시력까지 나빠지게 해놓고도 돈을 달라하면 돈을 못 줄 정도로 형편이 나쁜거도 아닌데도 안 줄 엄마가 흔하겠습니까? 어릴 때 시력이 나빠진만큼 노화도 일찍 온거 같습니다. 그리고 전 뇌전증 걸려서 처음 쓰러졌던 때가 제 나이 17살이었을 때였고 제가 간질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는거도 그 때 알게 되었고 지금은 약 먹는 중이라 발작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형도 현재 직업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글을 8년 전에 그 때는 주로 여자들만 보는 커뮤니티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에 올려놨습니다. 그 때 제 나이 30대 초반이었을겁니다. 전 그 때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안 풀리는걸까라며 그냥 쓴 글이라서 그렇게 많은 추천을 받게 되었을 지 몰랐습니다.. 그 때 추천이 150이었고 반대가 50이었을겁니다. 그러면서 그 때 여러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 댓글들의 내용을 지금 기억나는대로 써보자면 저건 전적으로 부모 책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자식이 무능하면 자식의 말도 들어봐야 한다 형에게 복수해라 복수하는건 잘 사는거다 그리고 근근히 살고 있는 형이 어느날 너에게 와서 저기 저 돈 좀.. 그러면 딱 잘라서 안 된다 밥이나 먹고 가라며 밥상 위에는 찬밥 한 그릇과 시들어빠진 총각김치 몇 개만 접시에 놓고 줘라라는거하고 그리고 또 용서는 미래를 넓혀줍니다 라는 댓글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그 분들도 지금 이 글을 보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 댓글 달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저를 싫어하는 여자들이 많을겁니다. 싫어하실거면 싫어하시길 바랍니다. 엄마한테 학대당하고 살았는데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남자가 될 수가 쉽게 있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형에게 맞은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거 같은데 엄마가 저에게 원룸 얻어주신거도 그 때 엄마가 형이 나를 때리고 전 아파서 소리 지를 때 출근하던 그 당시 상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그리고 친척 30명 모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도 알기 떄문에 뭔가 크게 잘못한 게 있어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전 15평인 방에서 형이 저를 때린거는 형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파트에서 때린거는 형 잘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생 형 안 볼 작정입니다. 

지금까지 형이 저를 때릴 때마다 엄마가 한 건 때릴거 다 때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형님이 뭐래?”가 전부였습니다. 그럼 뭐합니까 또 때리는데.. 아무 의미 없죠. 형이 저를 두들겨패는 상황이 1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자주 있었는데도 때릴 때 형의 팔이나 다리를 붙잡으면서 때리지 말라고 말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니가 행동이 느리고 동작이 느리니까 형이 너를 싫어하잖아 라고 형 편을 들었습니다.

어릴 때 3년 동안 그 15평인 방에서 TV채널 돌려서 형에게 자주 맞았던 게 얼마나 잔인한거냐면 그 때 형이나 저나 둘 다 꼬마였기 때문에 밤에는 밖이 캄캄해서 어두워서 어디 나가 놀기도 그래서 맞아서 아파서 그 방 안에서 울고 있었고 형 역시 울고 있는 저를 부모님이 고스톱 치러 다니느라 그 방 안에 없었던 밤마다 휴일마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만 했습니다. 3년 동안 자주 제가 우는걸 보고 있는다고 생각하면 형이 저를 좋아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형에게 맞는 게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나는 아주 흔한 일이라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당신도 형제나 자매에게 맞아서 스트레스 푸느라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했습니까? 그래서 뇌전증에 걸렸습니까? 그리고 눈도 많이 나빠졌습니까?

그럼 오락을 안 하면 되지 않았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겁니다. 그 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전 제 평생 가장 잘한 일이 형에게 그렇게 맞으면서도 기분 나쁘다고 나보다 약한 애를 때리지는 않은거입니다. 

엄마 나이 70될 떄가 멀지 않았습니다. 전 그나마 엄마가 지금이라도 반성을 하는거같아서 취직해서 돈 벌려고 고시공부하겠다는거지 반성을 하지 않았으면 반성할 떄까지 평생 일도 공부도 안 해도 되고 엄마에게 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성인이면 돈 벌라는 말을 하고 싶으십니까? 저에게 돈을 맡겨놓기라도 했습니까? 그 말을 저한테 한다고 해서 엄마가 저한테 고시 붙을 때까지 돈을 열흘에 한 번씩 30만원씩 안 주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저에게 요즘 할말이 없다 무조건 잘못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릴 때 3년 동안 잘못하면 30년 넘게 후회할 수도 있다는걸 알려드리고 싶기 떄문입니다. 형에게 좀 맞은 게 뭐 대수냐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당신은 길 가다 모르는 사람에게 딱 한 대만 세게 맞아도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신고 안 해도 기분은 나빠할거면서 왜 그러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15평인 방에서 제가 겪은 일은 선진국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낮습니다. 선진국에서 집에 아직 꼬마인 애들만 두고 외출하면 아동방임도 아동학대의 유형이라며 체포될 수 있습니다. 그럼 선진국 가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까? 무슨 사건만 생겼다 하면 그리고 처벌이 약하다 하면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 없었습니까? 있었으면 그 때도 그럼 그 사람에게 선진국 가라고 했습니까? 안 했으면 왜 안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