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 다리비비기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 

 내 의도가 원래 그게 아니었단말이지 

 내 소개부터 우선 간단하게 하지 

 난 우선 우리 아버지 밑에 3형제중 둘째 

 형은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위고 

 동생은 나보다 세 살 어려 

 그리고 아버지 직업을 설명하기가… 

 좀 복잡한데 

 

 우선 젊은 시절엔 공무원을 좀 하셨던걸로 알고있어 

 하지만 몇 년 못가서 그만두시고 

 그 다음엔 가령 한의사나 변호사 같은 것을 하는 

 친구 밑에서 그 일을 돕는 보조알바 비슷한걸 하다 

 또 뜻밖에 나이 30대 후반쯤부터는 

 유력정당의 당직자로 또 4-5년 일하시기도 하고 

 좀 생각보다 여러 가지 직업을 

 이것저것 전전하신분은 맞아 

 ‘니 아버지 뭐하시는 분이시냐 ?’고 물으면 

 딱히 뭐라고 똑 부러지게 대답하기 

 난감할 정도로 말이지 

 

 그리고…그렇게 일정한 직업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고 

 오래 못가 그만두고 다시 새 일 찾으시고 

 또 얼마못가 그만두시고 다른일 하게 되시고 

 그런 아버지에게 염증을 느끼신 탓인지 

 엄마는 오래전에 집을 나갔지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 

 아마 형이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이었을거고 

 내가 네 살 

 막내는 이제 겨우 걸음마나 좀 뗀 수준이라 

 엄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아이야 

 불쌍하게도 

 그나마 난 어린시절 

 엄마,아빠가 싸우는걸 어렴풋이 

 목격하거나 들은 기억이 있긴 한데 

 

 다만 우리집 부부싸움은 좀 특이하게 

 아빠나 엄마나 성격이 좀 유별난편이 있는지 

 무슨 큰소리가 나거나 물건이나 집기가 

 던져지거나 부셔지거나 그런 기억이라기보단 

 아버진 마치 무슨 유세장에서 연설이라도 하는 

 정치인마냥 제법 조리있게 조근조근 

 장황하게 엄마한테 뭔가를 설명하는듯한 

 그런 느낌이었고 

 – 물론 나야 어릴때니 그 아버지의 엄마앞 일장연설을 

 무슨말인지 알아듣지 못할떄지만 

 유치원도 다니기 전인 형도 마찬가지구 

 어머니는 아버지에 비해 말주면이 좀 없거나 

 그런 성격이었는지 

 그렇게 연설형으로 뭔가 설득을 하거나 설명을 하는듯한 

 아버지 앞에서 

 뭔가 한숨을 내쉬거나 

 가끔 아버지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건 내가 잊을수 없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가 아버지를 바라보시던 

 그 경멸의 눈빛을… 

 

 여하튼 그렇게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 집을 나갔고 

 이후 아버지가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시며 

 우리 3형제를 키워오신건데 

 다만 그렇게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전전하신 아버지일지언정 

 대체로 벌이가 좋은 직업군이라서인지 

 (* 공무원, 정당 당직자, 은행말단, 또는 법조인이나 

 의료계 종사자 사무보조 등등) 

 강북에서(대략 서울 도붕구 정도) 그런대로 

 중산층정도는 되는 분위기의 

 그런 단독주택에서 3형제가 함께 살았다 

 가령 무슨 ‘황인용,강부자입니다’나 ‘여성시대’ 같은 

 라디오 사연같은데서 이따금 듣는 

 집안 형편이 안좋아 형제중 한두명 정도를 

 먼곳에 입양보내거나 친구나 친척집에 

 잠시 맡긴적이 있다는 

 최소한 그런 사연 비슷한 일은 한번도 없었을 정도로 말이지 

  

 기억에 아버지가 일을 나가시면 

 가끔씩 파출부 아줌마가 들어와 우리들을 돌봐주고 밥챙겨주고 

 그러던 기억도 있었을 정도로 

 최소한 먹고사는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던 

 그런 집안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래도 나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자부할수 있다 

 물론 나 싫어하는 사람들중엔 

 더러 이런말을 하기도 하더라 

 너무 때와 장소 안가리고 

 생각없이 아무말이나 내뱉는다던가 

 또는 어렵사리 잡은 컨셉이나 설정을 

 함부로 망가뜨린다던가 

 – 가령 신비주의 컨셉이라던가 

 

 뭐 가령… 

 종교서클 같은 모임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본드흡입하는 비행청소년들 이야길 한다던가 

 식사자리에서 어린 여자애들 앞에서 X드립을 날린다던가 

 10대에 미혼모가 된 이웃집 여자애 이야길 한다던가 

 그런게 분위기 파악 못하고 아무 때나 아무 이야기나 

 마구꺼낸 사례중 하나라면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악의없이 하는 농담이나 장난이고 

 원래 그렇게 악의없이 나보다 열 살,스무살 많은 

 형이나 누나 혹은 어른이나 아저씨,아주머니들한테도 

 가령 형님,누님 때로는 사모님,장모님 하면서 

 그렇게 실없는 농담 잘하며 잘 어울리고 

 아무한테다 쉽게 말도 잘 붙이고 술도 잘 따라드리고 

 이러는 나 대개는 그렇게 

 붙임성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그런 아이 

 보통은 그렇게 평가했지 

 최소한 나 싫어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얼마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경건하고 거룩하게 진행되어야하는 

 그런 엄숙한 자리에서 

 아무데서나 함부로 아무한테 

 그런 이야기를 막 떠들어대면 어쩌냐구 

 핀잔주는 이들도 가끔은 있었지만 

 확실히 기억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많았지 

 싫어하는 사람 그리 많지 않았다. 

 가령 머리는 좀 날라리처럼 길게 기르고 다닐지언정 

 원래 그렇게 사람 잘 사귀고 

 악의없는 농담,장난 잘 치는 날 

 제깢게 무슨 시쓰는 시인이나 도닦는 도인이라도 되는양 

 쓸데없이 점잖빼며 꼴값떠는 

 그런 선비질 범생이들보다는 

 날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런일도 있었다 한번은 

 한번은 이웃에 사는 여자애 하나가 

 그러고보니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태릉선수촌이라고 예전에 있었는데 

 그곳에 유도부,태권도부 언니,누나들이 

 막 자기 맨날 때리고 괴롭힌다며 

 하소연하는 어린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격분하여 나름의 정의감에 

 태릉선수촌 유도부,태권도부 

 여성회원 전원에게 

 도전장을 내걸었다 

 한판 붙자구. 날 잡아서… 

 

 태릉선수촌 유도부,태권도부 언니,누나들은 

 처음엔 웬 밥먹고 할짓없는 녀석이 장난을 치나 하고 

 꼴갖잖게 여기고 대수롭지않게 넘어갔나 본데 

 나의 도전장이 두 번세번 이어져 날라오자 

 결국 내게 답장을 보내주더군 

 모월모시 먹골배 농원으로 나오라고 

 한판 붙자고 

 태릉선수촌 유도부,태권도부 여자애들이 

 한판 붙자는 나의 도전에 응해준 

 운명의 날 

 장소인 먹골배 농원으로 가보았더니 

 태릉선수촌 유도부,태권도부 총 17명 

 그렇게 나와있더라 

 

 나는 붙었다. 

 태릉선수촌 유도부,태권도부 여자애 17명과 붙어 

 모두 쓰러뜨려 이겼다 

 전설의 먹골배 농원 17:1 전투 승리가 

 그렇게 이루어진거지 

 난 그 아이들에게 

 다시는 우리동네 이 아이 건드리지 말라고 

 각서까지 받아낸뒤 

 왕따와 괴롭힘에 시달리던 동네 여자아이 

 보호하며 유유히 휘파람불며 

 집으로 돌아왔다.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 중학생때 일인데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남학교는 아니고 남녀공학이었어 

 그리고 때는 화창한 5월 

 하루는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몇몇 애들끼리 

 돈을 모아 함께 표를 구입 

 야구장에 가기로 했어 

 당시는 뭐 프로야구가 초창기로 

 한참 어린이,청소년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어모으기 시작할때니 충분히 있을수 있는일이고 

 막상 몇몇이 그렇게 뜻을 모으자 곧 소문이 났는지 

 너도나도 함께 가자는 애가 늘어나 

 정확히 남자애 8명, 여자애 6명 

 5월의 한 휴일 날을 잡아서 야구장에 놀러갔지 

 다만 그날 경기는 

 우리가 응원하려는 팀이 대패하는 바람에 

 기분은 그리 좋지 못하게 돌아오고 말았어 

  

 뭐 경기는 패했지만 울적한 마음은 

 돌아오는길에 오락실에서 신나게 뿅뿅이라도 하면서 

 적당히 마음 달래고 돌아왔는데 

 다음날 학교에 가니 뜻밖의 사달이 났어 

 담임선생님이 얼굴이 시뻘개져서 들어오시더니  

 ‘어제 야구장 간 XX들 다 나와 !!!’ 하며 한바탕 난리를 치시더군 

 그…무슨…야구장간게 큰일이라고 

 그 난리를 쳤으랴 싶겠지만 

 일단 그때가 중간고사 치르기 직전이었고 

 그보다 한 두어주쯤전인 4월 중순인가 하순에 

 장학사님이 학교에 방문하시는 행사가 있었어 

 장학사님이 수업을 참관하신게 공교롭게도 우리반이었는데 

 그때 아마 장학사님이 얼굴을 기억해낸 

 우리반 학생 몇몇이 있었나봐 

 그리고 그날이 휴일이라 방송사에서 해당 야구경기 

 생중계를 하고 있었는데 

 대략 5회말 끝나고 경품추첨할 때 

 아마 방송사 촬영진도 중학생 열댓명이 단체로 관람와서 

 구경하는게 보기드문 진풍경이라 생각했는지 

 장시간 우리가 경품추처 맞히기만을 기다리며 

 한참 표를 바라보고 있으때 

 그걸 꽤 장시간 ? 한 5분가량 ??? 

 찍었나보군 

 

 근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집에서 

 TV를 보시던 장학사님이 그 광경을 목격하셨나봐 

 몆주전 참관수업간 그 학교 반 학생 얼굴 몇몇이 

 TV 야구중계 5회말 끝나고 경품추첨할 때 

 제법 장시간 찍혀나온 모습이 

 그래서 장학사님이 바로 우리학교 교장선생님께 전화하셔서 

 이러셨대 

 ‘그 학교 아마 곧 중간고사인걸로 아는데… 

 학생들이 공부도 안합니까 ? 다들 야구장가 있는거 같던데… ’ 

 

 “ 야 !!! 어제 잠원동 간 XX들 다 나와 !!! 이 망할 XX들아 !!! 

  장학사가 그거 다보고 학교가 난리가 났어 !!! 교장선생님은 지금 

  초죽음이 되어있고… ” 

 뭐 장학사가 참관한 그날엔 공부도 꽤 잘하고 모범생도 많은 

 그런 학교로 학교측에선 잔뜩 자랑질,홍보질을 해댔을텐데 

 곧 중간고사 치르는 학교에서 그런 학생 무려 열댓명이 

 휴일이랍시고 단체로 야구장간게 

 심지어 그것도 장학사님이 그걸 알아보시고 

 교장선생님꼐 전화를 했으니 

 얼마나 학교가 발칵 뒤집혔을까… 

 대충 짐작이 되겠지 ? 

 다만 그 상황에서도 좀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된게 

 아마 담임선생님이 뜻밖에 야구에 평상시 별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분이셨는지 ? 기억에 당시 연세가 40대 중반 

 정도 되시는 남자선생님이신걸로 알고 있다. 듣기로 우리학교 오시기전엔 

 광희중학교에서 학생주임까지 역임하셨다던데 

  

 여하튼 야구는 잘 모르는 선생님이셨는지 

 실제로는 ‘잠실 야구장’ 아닌가. 헌데 

 발음이 비슷한것도 아니고 성이 잠씨(?)인 것 빼고는 

 별다른 공통점도 없는 ‘잠원동’이란 동네를 평상시 얼핏 

 들어본바는 있으신지 

 계속 이러시는거야. 담임선생님 첫 육셩을 

 요즘식으로 워딩일 그대로 옮기면 

 “ 야 !!! 어제 잠원동 간 XX들 다 나와 !!! 전부 손들어 !!! ” 

 사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전날 야구장 간 다른애들 대다수 

 우린 적어도 ‘잠실야구장’엘 갔지 ‘잠원동’이란 동네엔 간적이 없으니 

 ‘우린 말고 무슨 다른애들이 말썽을 부렸구나’ 생각했는데 

 여전히 혼동을 거듭하시는 담임선생님께서  

 ‘잠원동 야구장’과 ‘잠원동’을 계속 번갈아 고래고래 소리치시니 

 눈치좀 빠른 몇몇이 비로소 사태를 짐작하고 

 ‘아…어제 잠실야구장 간게 TV에 찍혀 나왔고 그걸 누가 본 모양이구나’ 

 그렇게 사태를 짐작하고 

 문제의 잠실패거리들이 하나하나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지 

 담임선생님은 여전히 ‘잠실야구장’과 ‘잠원동’을 혼동하신채 

 애꿎은 ‘잠원동’만 계속 

 부르짖고 계셨고… 

 결과적으로 그날 우리 전날 잠실야구장 간 열네명은 

 담임선생님한테 죽도록 두들겨맞고 기합도 받았다. 

 세상에 중간고사가 낼모랜데 야구장 가는 그런 정신나간 X들이 

 세상에 어디있냐며…… 

 

 아버지가 재혼을 하신게 

 내가 고등학교 2학년, 그리고 형이 재수할 때 

 그리고 나랑 세 살터울인 막내가 중학생때지 

 근데 이미 말한바와 같이 

 아버진 돈이 많은것도 아니고 빵빵한 직업을 가진것도 아니며 

 심지어 애도 한둘도 아닌 징글징글한 사춘기 아들이 

 셋씩이나 있는데 

 그런 아버지의 재혼이 어찌 성공하셨을지 

 내가봐도 좀 신기한 일이긴 하다. 

 말헀듯이 아버지는 한때 공무원으로부터 시작 은행원 

 변호사 사무실이나 한의사 및 알바 혹은 정당 당직자등 

 20대 중반때부터 30-40대까지 

 오만 직장을 전전하셨는데 

 이 무렵 아버지 연세는 어느덧 50에 다다르고 있었고 

 좀 뜻밖에도 이때는 

 성당지기일을 하고 계셨다 

 참…아버지가 거쳐가신 직업군이 하나하나 다 특이하긴 한데 

 이번엔 또 나이 50에 성당지기라니 

 헌데 나름 열심히 일하셨고 

 마침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30대 초반의 노처녀 신도와 

 어떻게 눈이 맞아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신거야 

 …사실 교회다니는 자매들이 배우자 고르는 기준 

 X나 까칠하다는 이야기 정도는 나도 얼핏 들었다 

 근데 그런것에 비해 천주교 믿는 누나들인 

 교회다니는 자매들만큼 까칠하진 않나봐 

 – 이래저래 천주교가 기독교에 비해선 쿨한 종교라는건 

 확실히 증명되는군 

 

 어쨌든 그렇게 나이 50에 성당지기 노릇하다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매와 결혼하게 되신 아버지 

 새엄마가 된 여자는 여하튼 그때 나이는 서른 

 그리고 고향은 충남 천안이고 5자매중 넷째인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 올라와서 쭉 직장생활을 하며 

 신앙생활은 또 신앙생활대로 그렇게 하며 

 그렇게 살다 

 아들이 셋이나 있는 이혼남인 아버지와 

 결혼까지 하기에 이르신거더군 

 

 그렇게 새엄마를 맞이하게 된 우리 3형제 

 일단 우리 셋 다 어쨌든 어린시절 부모 이혼으로 

 엄마없이 자란 상처와 그늘은 나름 다 있었고 

 다만 형은 그래도 집안에 맏이라고  

 나이 50에 어렵사리 재혼하신 아버지 잘 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새엄마한테 마음을 열고 잘해드리려는 눈치가 보였고 

 아직 중학생인 막내는 나름 모정결핍에 애정결핍도 있고 

 그리고 뜻밖에 새엄마 눈에도 

 열 살남짓 차이밖에 안 나는 형이나 나와는 달리 

 막내와는 열여섯살차이라 그래도 

 조카나 막내동생 같은 만만한 느낌은 드는지 

 그런대로 잘해주는 느낌이더라 

 

 나 ? 

 말했지만 나는 

 적어도 악의없는 농담이나 장난같은거 잘치고 

 심지어 때론 나보다 열 살,스무살 많은 누나나 아줌마들한테도 

 심지어 사모님,장모님 같은 농담성 호칭까지 써가며 

 붙임성있게 잘 어울리는 나 

 비록 분위기파악 못하고 가끔 쓸데없는 이야기 

 너무 자주 떠벌거린다는 핀잔은 받을지언정 

 적어도 그렇게 성격 쿨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붙임성 좋은 나 

 

 하루는 새엄마가 거실에 앉아있는데 다가갔지 

 그리고 

 사실 난 다리에 털이 좀 많아 

 뭐 털많은 남자는 세상에 많으니까 그건 뭐 그렇다치더라도 

 새엄마가 그때 마침 여름철이고 어차피 실내니 

 반바지차림으로 편안히 앉아있는데  

 다가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새엄마의 다리에 

 내 털수북한 다리를 

 비벼보고…싶다는… 

 

 ……. 

 

 사실 새엄마는 무슨 

 텔런트나 모델 뺨치게 미인이거나 

 혹은 각선미가 좋거나 몸매가 쭉쭉빵빵 늘씬한 

 뭐 그런 스타일은 아님 

 내 부족한 표현력으로 제대로 묘사가 

 가능할련지는 모르곘지만 

 굳이 비유를 하자면 

 대략 한 60-70년대 자료사진 같은데 

 이따금 나오는 그 시절 시골소녀 

 가령 그 시절(60-70년대) 시골 개울가 같은데서 

 반바지 차림 같은걸로 물장구치거나 망연히 있는 

 그런 시골소녀의 누르스름한 다리 

 무슨 탤런트나 슈퍼모델같은 미녀는 분명 아니고 

 적당히 상처나 짙은빛깔도 좀 있고 

 투박하지만 그런대로 일직선상의 다리형태는 

 크게 어긋나지 않게 갖추고 있는 

 60-70년대 자료사진속 시골소녀 

 70년대 시골마을 소녀의 누르스름한 다리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난 그런 새엄마의 다리에 

 털수북한 내 다리를  

 비벼보고 싶었던거야 

 70년대 시골 10대소녀 다리같은 

 새엄마의 누르스름한 다리에 

 한번 비벼보고 싶었지… 

 

 ‘끼야아아아아악~~~~~~~~~~~~!!!!!!!!!!!!!’ 

 

 나는… 

 단지 내 털수북한 다리를 

 70년대 시골소녀같은 새엄마의 누르스름한 다리에 

 한번 따스히 비벼보고 싶었을뿐인데 

 단지 악의없는 장난이었을뿐인데 

 새엄마는 기겁해서 달아나고 말았고 

 아무래도 아버지한테 그대로 고해 일러바쳤는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한테 

 난 죽도록 두들겨맞았다 

 

 사실 지금까지도 이해가 안가는건 

 새엄마가 아버지한테 고자질해서 

 화가 끝까지 오르신 아버지가 날 

 죽도록 패신것까진 그렇다치더라도 

 형이나 동생조차도 새엄마한테 

 그런짓을 한 나를 

 이해해주거나 역성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실은 우리 아버지 고향은 경상북도 경산… 

 총 6남매중 다섯째이신데 

 첫 번째가 딸로 아버지한테는 큰누님 

 우리한테는 큰 고모님이 되시는분이고 

 그 밑으로 아버지에겐 형님 

 우리에겐 큰아버지가 되는분이 두분 계시다 

 그리고 그 다음이 다시 딸로 

 다섯째인 우리 아버지 바로 손위인 누님이시고 

 그리고 아버지 밑으로 막내인 삼촌(숙부)이 

 한분 더 계신 그런 형제관계인건데 

 

 여하튼 우린 명절때면 보통 아버지 고향인 경산으로 내려가 

 친척들을 만나곤 했지 

 그리고 살면서 대충 들어보니까 

 세상의 아버지들의 자식훈육하는 방식은 

 크게 둘로 나뉘어지더라 

 일단 무작정 두들겨패고보는 폭력형과 

 또다른 유형으로 

 한바탕 장황한 연설내지 잔소리를 하시는 

 장황한 연설형 훈육 아버지가 있더군 

 사실 우리의 경우엔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웠어 

 솔직히 아버지가 감정적인 폭력이나 손찌검은커녕 

 회초리 한번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다만 한바탕 잔소리 내지 연설형 훈육이 시작되면 

 기본이 한시간이더라 

 우린 아버지의 장황한 연설형 훈육을 

 꼼짝없이 그 앞에 쭉 앉아서 

 들을 수밖에 없었던거지 

 

 글쎄… 

 폭력형 훈육 아버지 밑에서 들은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 들으면 

 ‘배부른 걱정이고 고민’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우리같은 애들 입장에선 

 그냥 몇 대 맞고 끝나는게 나을거 같아 

 솔직히 대충 보면 폭력형 아버지들은 그래도 

 뒤끝은 없어. 한번 화나면 그 순간 몇 대 맞고 끝나지만 

 의외로 연설형 훈육 아버지들이 

 뒤끝창연한 경우가 많아 

 한번 잔소리 시작하면 

 자식들이 잘못한거 10년젼,20년전 일까지 끄집어내며 

 그야말로…한시간 연설이 그런식으로 이어지는거지 

 

 그거 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하지 마라… 

 

 헌데 대충 명절 때 사촌형,사촌누나들한테 이야기 들어보면 

 아버지뿐만 아니라 큰아버지들도 

 대체로 폭력형보다는 연설형 잔소리 훈육 아버지들이었는데 

 – 참고로 막내인 삼촌은 어찌된 영문인지 

 나이 40이 넘도록 장가를 못갔어. 무슨 운이 없었던건지 

 여자와 인연이 없었던건지 

 사실상 장가 못가고 평생 독신으로 사신분이라 봐야하는데 

 뭐 우리 아버지도 어쨌든 젊은시절 이혼하고 

 나이 50 다 되어 새 인연 만날때까지 혼자사신분이니 

 그걸갖고 우리가 삼촌 흉볼처지는 아니지만 

 

 일단 그건 그거고… 

 대체로 보면 아버지도 큰아버지들도 

 대개는 잔소리연설형 훈육을 하시는분들이지 

 적어도 폭력 유전자는 거의 없는 그런 집안인것만은 분명해 

 대신 몇 대맞고 끝나는 방식이 아닌 

 한시간 연설겸 잔소리를 ? 경우에 따라선 10년전,20년전 잘못까지 

 끄집어내어 꾸중듣게 된다는게 진정한 함정이지만…-.- 

 

 여하튼 그런 아버지이건만 이례적으로 그날은 

 새엄마에게 그와같은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집으로 들어오셔선 날 

 죽도록 두들겨 패셨다는 점이지 

 아버지한테 언제 저런면이 있었나… 

 참 신기하고 이해가 안갈정도로 

 한가지 분명한건 

 아버지한테 죽도록 맞아본 경험은 

 그날이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식구들과 떨어져 따로 살고 있다 

 꼭 그날일 때문에 그리된 것은 아니고 

 그냥 고등학교 졸업한 뒤부터 

 내가 그냥 식구들 간섭 안받고 

 혼자 편히 사는게 좋았다 

 한편 

 새엄마는 그런일을 겪고나서  

 내가 무섭게 느껴졌는지 

 며칠안가서 보따리 싸갖고 집을 나갔다 

 아버지의 두 번째 결혼생활도 

 그렇게 깨진거지 

 

 형과 동생은 그일로 나를 오랫동안 책망했다 

 그래도 한 20여년 세월 어머니도 없이 혼자 

 우리 셋 키우며 고생하신 아버지 

 그래도 말년에 좋은사람 만나 여생을 조금이라도 

 편히 보내실수 있게 되었는데 

 너 때문에 이렇게 된거 아니냐며 

 나만보면 타박하고 책망하더라 

 

 거듭 말하지만 

 그날일은 어디까지나 악의없는 장난이었다 

 어린시절부터 곧잘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농담도 잘하고 장난도 잘 치던 나 

 그렇게 원래 악의없는 농담이나 장난 잘치던 나 

 종교써클에서 처음만난 아이들 앞에서 

 본드흡입하는 비행청소년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어린 여 중고생들도 여럿있는 식사자리에서  

 X드립고 종종 날리고 

 어느어느 사회동아리에서  

 나보다 열 살,스무살 많은 누나들, 젊은 아줌마들한테도 

 사모님,장모님 부르며 붙임성있게 잘 어울리는 

 그렇게 성격좋은 내 모습 그대로 

 새엄마한테도 그저 

 70년대 시골소녀의 누르스름한 다리같은 

 새엄마의 그 이색적 매력이 느껴지는 다리에 

 내 털수북한 다리 한번 비벼보고 싶었을뿐 

 단지 그렇게 내 친근함과 호감을 

 표시하고 싶었을뿐 

 그 외 다른 의도가 없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적어도 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좋다는 사람이 싫다는 사람보다 더 많았다 

 만약 내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 성격이 문제가 있는게 맞다 

  

 시간이 지난뒤 

 대구에 사는 큰아버지쪽 사촌형 두명과 

 술자리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 형들도 나 비난하더라 

 ‘니가 잘못한게 맞다’며… 

 그러고보면 사촌형들도 형들이지만 

 큰아버지나 고모님들 입장에서도 

 젊은시절 그렇게 한번 아픈경험(이혼)하고 

 혼자 애 셋키우며 오래 고생한 동생이 

 그래도 다 늙어서나마 뒤늦게라도 

 좋은인연 만나 여생을 편하게 보낼수 있게되어 

 다행이려니 생각했을텐데 

 그런 두 번째 결혼마저도 그렇게 그르치고 말았으니 

 그에대한 안타까움은 또 오죽하셨으랴 

 그 정도의 판단능력은 나에게도 있다 

 그러니 뭐… 

 시촌형이나 사촌누나들이 내가 잘못한게 맞다며 

 비난하는것도 감수할수 있다 치더라도 

 

 거듭 말하지만 

 악의없는 장난이었다 

 그저 나는 내 나름대로 그렇게 

 70년대 시골소녀같은 누르스름한 새엄마 다리 

 한번 비벼보는 것으로 내 친근함과 호감을 

 표시하고 싶었던것뿐인데 

 마치 소싯적 어느어느 동아리 모암에서 

 나이어린 여중고생들과의 식사자리에서  

 X드립 날리던것과 별다를바 없는 

 악의없는 장난이었다는 소리다. 

 어느어느 사회동아리에서 나보다 열 살,스무살 많은 

 젊은 아주머니들한테도 

 사모님,장모님 하면서 잘 어울리던 내 성격 그대로의 

 친근한 악의없는 장난이었다는 소리다 

 

 그걸…새엄마…한때나마 새엄마였으니 

 일단 편의상 그렇게 부르자 

 여하튼 그분한테 

 제대로 해명할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게 

 유감일뿐이다. 

 그렇게 집을 나가버린 새엄마를 그 뒤로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을테니까 

 다만 새엄마의 기억에 날 

 이상한 괴물로 인식된채 끝나지만 않았으면 하는 

 그 아쉽고 안타까운 바램이 있을뿐이다 

 혹시라도 시간이 지난뒤 나중에 재회하면 

 그날일은 진심 ‘악의없는 장난’이었을뿐이라고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고백하고픈데 

 그런기회가 없었던게 유감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까지 나 살아오면서 

 나 좋다는 사람이 싫다는 사람보다 많았다 

 모임에서든 학교에서든 동아리에서든 

 그렇게 실없는 농담 잘하며 붙임성있게 

 나이가 나보다 어리든 많든 상관없이 

 장난,농담 잘하고 잘 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악의없는 농담,장난 잘 하는 나를 

 적어도 싫다는 사람보다는 

 좋다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런 나를 

 괴물처럼 봤는지 그날 그렇게 

 찢어지듯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버린뒤 

 그렇게 끝나버린 새엄마와의 인연 

 지금이라도 그날일을 허심탄회하게 

 해명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없다는게  

 유감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